산행기

기백(1,330.8m)~금원(1,352.5m) 설원 종주

산이야 2010. 2. 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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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10. 02. 19 ~ 20

◊ 동    행 : 영섭, 흥식

◊ 산행코스 : 용추사 일주문 - 기백산 - 금원산 - 수망령 - 오토캠프장 - 일주문

◊ 산행시간 : 8시간39분

   05:08 산행시작    07:20 기백산     09:43 금원산(식사 후 10:53 출발)

   11:57 수망령      12:16 수망령 출발     12:53 오토캠프장    

   13:35 용추폭포    13:47 산행완료

◊ 기백산~황석산 거리(km) : 21.65

   일주문 →기백산(4.2) → 금원산(4.0) → 수망령(1.9) → 큰목재(1.5) →

   운신재(1.45) → 거망산(3.7) → 황석산(4.6) → 유동마을(2.0)

◊ 산행이야기

   산에 대한 정보를 알기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으나 산행기가 별로 올라와

있지 않아 지도를 참고하니 9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환종주 계획으로 산행에 나섰다.

19일 23:45 모란에서 출발하여 2시간30여분 만에 함양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식당에서 식사하고 용추사 일주문 주차장에 도착하니 04:00, 차안에서 1시간 잠을 청하고

05:00부터 산행준비 후 08분에 산행시작.

   들머리는 일주문을 지나 조금 가면 산행안내판과 이정표가 있는 오른쪽으로 진입하면 된다.

도숫골 계곡이 워낙 길어 1시간20여분을 계곡따라 가야하며 완만하게 이어져 이곳까진 편안하게

오를수 있었다. 그러나 능선에 접하면서부터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나아가야 했으며

세찬 바람을 맞으며 산행하려니 제법 힘에 부친다. 지도상에는 기백산까지 1시간40분 표기되어

있으나 우린 32분이나 지체된 2시간12분이나 걸려 도착하였다. 이곳에 눈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는데 판단을 잘못하여 간발의 차이로 일출도 보지 못하였다.

   정상에 서니 서북 방면으로 백두대간의 장쾌한 능선과 상고대 옷을 입은 덕유산의 모습이 멋진

우리산하의 모습을 여실히 나타내 주고 있었다. 또한 정산 부근에는 나뭇가지에 붙은 눈이 얼어

생기는 빙화가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 경치는 금원산 동봉 오르기전 안부에서

뒤를 돌아보면 잘 감상할 수 있다. 금원산 정상표지석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식사하는데 아무도

소주 한잔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식사 후 가야 할 등로를 주시 하였는데 아마득하게 펼쳐진다.

수망령까지 1.9km로 40분 정도면 내려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1시간4분이나 걸렸다. 하산길임에도

능선에는 여지없이 눈이 쌓여있어 다리를 90도로 들어올려야 진행할 수가 있었고 이로 인해 체력

소모는 배가 되었고 시간도 지체되었다. 수망령 정자에서 잠시 휴식하고 거망산을 향해 오르는데

이젠 진행 속도가 매우 더디어 더 이상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나머지 구간을 포기하고 바로

일주문으로 하산키로 결정하고 도로따라 내려가는데 어찌나 긴지 지루하기 그지없고 햇살이

따스해 걸으면서도 졸음이 올 정도였다. 그나마 용추폭포 구경에 위안을 삼고 이번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지도상에 표기된 시간보다 단축하여 진행하였을 것인데 겨울산행을 무리하게 잡은

내가 잘못이다. 더욱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곳 인데다 러셀산행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

계획을 이루지 못한 잘못임을 깨닫고 앞으로 겨울산행은 시간당 20분을 더 잡아 계획하여야겠다.

어찌 되었든 오늘 하루 눈 속에 빠져 걷느라 눈이 지긋지긋할 따름이다.

◊  참고지도인데 소요시간이 다르다 - 아래것이 맞는것 같음

 

 

 

 ◊ 사진설명

산행들머리 

 

 

눈에 빠지는 모습

 

 

 

 

기백산 정상 표지석

 

 

돌탑 위에 안의산 이란 표지석이 있음

 

 

누룩덤의 모습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빙화

 

 

 

 

 

 

금원산 표지석

 

 

거망산 능선

 

 

수망령에 있는 정자

 

 

용추폭포

 

 

 

 

 

 

피바위의 모습

 

 

☞ 피바위

선조30년(정유년 - 1597) 정유재란에 왜구와 격전이 벌어지면서 부녀자들도 돌을 나르며 적과의 싸움에

온 힘을 다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족으로 성이 함락되자 성안의 부녀자들이 줄줄이 산성 및 벼랑으로

몸을 던져 벼랑아래 바위가 붉은 피로 물들었고 피맺힌 한이 스며들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혈흔이 남아 있어 피바위라 부른다 함

 

☞ 누룩덤

: 누룩이 포개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